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빅터 앰브로스 미국 메사추세츠대 교수가 연설을 위해 지난 7일 비영리 학술단체인 최종현 학술원에 방문했다. 연설을 시작하기 앞서 청중들에게 자신의 학생 시절 성적표를 보여줬다. B학점이 많았다.
앰브로스 교수는 "나는 과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탁월한 천재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라며 "노벨상이 아니라면 그저 호기심 많고 열심히 하는 수많은 과학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이렇게 환대를 받게 되니 미안하고 영광"이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노벨상을 받았으니 누구나 받을 수 있을거라고 믿어도 좋다"고 했다. 필자가 사회자로서 "가장 최근의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소개했는데,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앰브로스 교수는 학계 최초로 마이크로 RNA(리보핵산)를 발견했다. 우리 몸 안에서 여러 생리활성을 일으키는 핵심 물질은 단백질인데 널리 알려진 유전물질인 DNA가 전사(tran--scription) 과정을 거쳐 전령RNA(mRNA)를 만들고, 이 mRNA가 세포질 내 단백질 제조 공장인 '리보솜'에 운반돼 단백질을 생산한다.
마이크로 RNA는 매우 작은 RNA 조각으로, 동식물의 기관 형성 및 생명체의 성장과 탄생, 면역 반응과 신경계 발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앰브로스 교수는 마이크로 RNA를 예쁜꼬마선충에서 처음 발견했지만 이후 사람에게도 마이크로 RNA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연구는 마이크로 RNA가 신경 관련 질병·암세포 증식·면역 반응 등 여러 질병의 기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해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RNA는 크기가 작을 뿐 아니라 단백질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RNA 그자체로서 생물학적 기능을 하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유전자다
역대 수상자 중 노벨상을 받자마자 이렇게 빠르게 한국을 방문한 경우는 앰브로스 교수가 처음이다. 앰브로스 교수를 초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내 DGIST의 한 교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 초청 수락을 받아냈다고 했다. 앰브로스 교수는 소규모 모임에 대한 애정이 크고 학생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한국에 그런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더니 통했다고 한다. 앰브로스 교수의 학생들을 향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연설 중엔 학생들의 질문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 그 중에는 과학을 하다가 힘들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많았다. 돌아온 답은 따뜻했다. 앰브로스 교수는 "처음 가는 길이 어려운 건 당연하고, 내가 뭔가 잘못해서 연구가 안된다는 생각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료"라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과학 분야는 '결과'를 개인이 오롯이 책임질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그 '과정'에서 협력할때 길이 넓어진다며,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질문한 학생은 평생 받들고 살아갈 좌우명을 얻었을 것이다.
앰브로스 교수 덕분에 노벨상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필자 또한 과학은 평범한 사람들의 '호기심'으로 출발해 '끈기'로 완성하는 구도자의 길과 같은 것임을 다시 새겼다. 호기심과 끈기, 협력이 과학을 구원할 것이다.

이준호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