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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과학] vol.43 숨는 바이러스와 그걸 지켜보는 과학자

2026. 10. 06

 

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주의 과학』입니다.

 

오늘부터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됩니다.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한동안 뉴스에서 과학자들의 이름과 낯선 연구 주제를 자주 만나게 될 텐데요. 누가 상을 받는지도 궁금하지만, 그분들이 무엇을 알아냈는지, 어떻게 알아냈는지 듣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죠.
 
발견의 주인공들에게 관심이 모이는 이번 주, 『요주의 과학』에서는 연구자들이 풀고 있는 문제와 연구하는 방식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안광석 서울대학교 교수님과 함께, 우리 몸에 오랫동안 숨어 사는 바이러스와 이를 잡으려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봅시다. 이어서는 지난 호에 예고해드린 AI와 수학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AI가 인간보다 먼저 난제를 풀기 시작한다면, 수학자들에게는 어떤 질문이 남을까요? 문제를 푸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에서 출발해,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까지 생각해봅니다.

면역의 눈을 피하는 바이러스의 생존법

이번 호에서 소개해드릴 연사님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안광석 교수님입니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을 어떻게 피하는지 연구하는 바이러스면역학자로, 만성 감염의 원리와 치료의 실마리를 찾고 계십니다.
 
교수님은 1994년부터 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CMV)를 연구해오셨습니다. CMV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몸속에 오랫동안 잠복할 수 있는 바이러스인데요. 바이러스가 있음을 감지하는 면역세포가 있는데도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잡을 상대를 알고 있는데, 왜 잡히지 않는 걸까요? 이것이 바로 안 교수님께서 지난 30년 넘게 들여다본 문제랍니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직 있다고요?

 

어릴 때 앓았던 수두와 어른이 되어 생기는 대상포진. 이름도 증상도 다르지만, 원인은 같은 바이러스입니다. 수두가 나은 뒤에도 바이러스가 몸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신경세포에 숨어 있다가, 면역이 약해졌을 때 다시 활동하면 대상포진이 생길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몸속에 남아 잠복하는 바이러스는 증상이 없다고 해서 없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기회가 생기면 다시 증식하는 거죠. 안 교수님은 이런 바이러스를 ‘기회주의자’라고 표현하시는데요, 면역의 감시가 삼엄할 때는 숨고 느슨해지면 나오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몸의 방어가 허술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침입에 빠르게 반응하는 선천면역, 특정 병원체를 정밀하게 겨냥하는 후천면역이 함께 작동합니다.
잡으러 왔는데, 얼굴이 안 보이네
 
바이러스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이 방어망을 피할 방법도 갖춰야 할 텐데요. 안 교수님이 연구해온 CMV는 바로 이 숨바꼭질에 능하답니다.
 
우리 몸에는 CMV를 인식할 수 있는 T세포가 있습니다. 원리적으론, 감염된 세포가 바이러스 단백질의 조각인 ‘항원’을 표면에 내보이면, T세포가 이를 알아보고 감염된 세포를 제거할 수 있죠. 그런데 CMV는 항원이 표면에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도록 여러 단계에 걸쳐 방해한다고 합니다. 잡으러 온 면역세포는 있는데, 바이러스가 감염의 단서를 숨겨 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셈입니다.
 
이러한 CMV의 T세포 면역 회피 기전(immune evasion) 때문에, 안 교수님은 T세포 면역을 이용한 단백질 기반 후천 면역 백신 연구는 쉽지 않겠다고 판단하셨어요. 그리고 2010년부터는 RNA를 타깃으로 한 선천면역 연구로 방향을 옮기셨습니다.
바이러스는 경보 장치도 막습니다
 
우리 세포에는 바이러스의 DNA를 감지해 면역 반응을 시작하도록 돕는 cGAS(cyclic GMP-AMP synthase)라는 단백질이 있습니다. 이름은 조금 낯설지만, 침입자의 흔적을 발견하면 경보를 울리는 장치라고 생각하면 돼요.
 
CMV는 이 장치에도 손을 씁니다.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긴 비암호화 RNA’, 줄여서 lncRNA를 도구로 사용한다고 해요. CMV의 특정 lncRNA가 cGAS를 에워싸 그 기능을 억제하는 겁니다. 침입자가 감시를 피해 다니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경보 장치를 붙잡아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셈이죠. 작은 바이러스가 꽤나 치밀하죠?
숨어 있다면, 밖으로 나오게 하라
 
이미 몸속에 숨어버린 바이러스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안 교수님은 연구 중인 치료 전략을 ‘사냥개’에 비유해 설명하십니다. 사냥개는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감을 물어오는 일만 하지 않죠. 숨어 있는 새를 찾아 밖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연구 중인 치료 전략 가운데 하나가 이 사냥개의 역할과 비슷합니다. 깨워서 제거(shock-and-kill)하는 방법인 ‘lytic therapy’인데요, 숨어 있는 바이러스를 활동하게 만든 뒤, 바이러스 라이프 사이클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넣어서 제거를 노리는 거죠. 반대 방향의 전략도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하지 못하도록 잠복 상태에 단단히 묶어두는 'locking in latency' 방법이랍니다.
 
발표집 후반에는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직접 겨냥하는 유전자 가위 전략도 등장합니다. 다만 바이러스가 숨어 있는 세포를 찾고, 그 세포의 핵 안까지 가이드 RNA를 전달하는 것이 큰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 교수님은 ‘바이러스’를 운반책으로 활용하는 구상도 소개해주십니다. 바이러스를 잡는 일에 바이러스를 쓰는 방법, 그 뒷이야기는 발표집에 담겨 있습니다. 

미래는 한꺼번에 오지 않지만, 결국 모두에게 옵니다

"KBS에서 해설을 하고 나와서 그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2시간 동안 무릎이 후들거려서 못 걷겠더라고요. 인공지능으로는 절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영역이 깨졌다는 충격이 가장 컸고, 사람들이 앞으로 프로기사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2국이 끝나고 나서도 이세돌 9단이 남은 대국들을 다 이겨서 3대 2로 역전승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아요."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해설했던 박정상 9단은 그날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지금까지 나의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5국의 심판을 맡았던 이다혜 5단의 이야기입니다. 
 
장강명 작가는 이런 바둑 기사들의 이야기를 『먼저 온 미래』에 담았습니다. 바둑에 먼저 도착한 그 미래가 올해 수학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아무도 답을 모릅니다. 수학자들도 지금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이번 편은 그 현장을 같이 따라가 봅니다.
『먼저 온 미래』 표지 

풀렸는데, 왜 다들 표정이 어두울까

 

AI가 수학의 오랜 난제들을 풀어내자 수학계의 반응은 환호만이 아니었습니다. 올여름 국제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 수상자 테렌스 타오는 지금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신중하고 낙관적인 사람으로 알려진 그가 AI가 수학의 가치와 관행에 위기를 만들고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9월 11일에는 허준이 교수를 비롯한 20여 명의 필즈상 수상자가 공개서한을 냈습니다. 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문제를 푸는 것이 수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증명을 받아 든 수학자가 맨 먼저 묻는 것은 "맞는가"이죠. 하지만 곧이어 묻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이 증명에서 앞으로 다른 문제 수십 개를 풀게 해 줄 개념은 무엇인가. 좋은 이론은 외워야 할 사실을 줄이면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늘려 주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난제는 그런 이해가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재는 등대 같은 것이었고, 문제를 푸는 일은 이해에 이르는 수단이자 대리 지표였습니다. 그런데 기계가 모든 추론 단계를 확인해 줘도, 어떤 가정이 본질적인지, 어디까지 일반화되는지는 여전히 모를 수 있습니다. 증명이 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사이에는 간격이 있고, 기계가 증명을 대량으로 만들어 낼수록 그 간격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서한은 이 문제를 교육으로도 이어 갑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는 이유가 숙제장을 채우는 데 있지 않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AI 기업들이 문제 풀이를 성능 경쟁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수단이 목적을 삼켜 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참인 명제가 쏟아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아이디어를 돌보고 키울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서한은 말합니다.

 

같은 걱정이 수학자마다 다른 결로 나옵니다. MIT 수학과의 즈웨이 윈 교수는 결과만큼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서 "AI가 나의 여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컬럼비아대의 마이클 해리스 교수는 5년 넘게 수학의 기계화를 비판해 온 수학자입니다. 그는 수학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보다 그래픽 아트나 글쓰기에 가까운 일로 보고, 유용한 결과를 만들기 전에 인간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번영하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반대편의 풍경도 있습니다. 미국수학회 회장 라비 바킬은 올여름 Claude가 야코비안 추측의 반례를 찾아냈을 때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정상급 수학자들이 블로그에 모여 이 추측이 왜 틀렸는지를 함께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는 이것을 AI가 수학을 더 재미있게 만든 행복한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이해는 무엇을 더해 주는가

 

하지만 질문을 뒤집어 볼 수도 있습니다. 답이 맞으면 된거 아닌가요? 이해는 무엇을 더해 주는 걸까요?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의 신경과학자 앤서니 자도르는 The Transmitter에 기고한 글에서 이 질문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먼저 현실을 인정합니다. 미국 국립예술기금의 연간 예산은 약 2억 달러인데, NIH와 NSF를 합치면 5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약 250배입니다. 이해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과학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보상일 뿐, 사회가 연구비를 대는 이유는 아니라고 그는 말합니다. 사회가 과학에 예술보다 250배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유는 ‘이해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며, 이해 없이도 예측과 그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대중은 아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것이라고요.

출처: The transmitter

그렇다면 정말 이해 없는 예측만으로 충분할까요? 이 질문에는 천문학의 역사가 좋은 사례를 줍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지구를 중심에 놓고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을 원 위에 원을 겹쳐 가며 맞췄습니다. 이 방식은 천 년 가까이 행성의 위치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쓰였습니다. 뉴턴이 천동설을 대체했을 때도 예측의 정확도 자체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설명의 크기였습니다. 행성의 궤도, 떨어지는 사과, 바다의 조수를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게 된 것입니다. 이해는 여러 현상을 하나로 묶어 다른 문제에 가져다 쓸 수 있게 해 줍니다.

 

최근 연구가 이 구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뉴턴의 법칙으로 만든 수천만 개의 가상 행성 궤도를 AI에게 학습시켰더니, AI는 행성의 다음 위치를 아주 정확하게 맞혔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있는 힘, 곧 중력이 무엇인지 추론하게 하자 엉뚱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궤도마다 잘 맞는 규칙을 따로따로 외웠을 뿐, 모든 궤도를 하나로 꿰는 법칙은 찾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의 쓸모를 말하는 대표적인 논거입니다. 다만 이 논거에는 단서가 따라붙습니다. 이해가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인 동안에만 방패가 되어 줄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AI가 더 좋은 압축과 더 좋은 이론까지 내놓는 날에는 같은 압박을 받습니다. "질문을 고르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대답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틸지 아직 모르는 말입니다. 시간을 벌어 주는 논거일 수는 있어도 영원한 논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의미가 사라진 일을, 사람은 사랑할 수 있을까

 

다만 장강명 작가는 『먼저 온 미래』에서 일자리와 연구비를 지켜도 남는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스카이넷과 터미네이터는 나타나지 않고, 당신도 어쩌면 일자리를 잃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사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를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이세돌 9단의 은퇴 소회가 그 부서지는 가치의 한 장면입니다.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는데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사실 이게 예술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일종의 게임이 된 것 같다. 그런 점이 굉장히 아쉽다."

 

그가 잃은 것은 승리가 아니라 일의 위대함, 곧 의미였습니다. 장강명 작가는 같은 상황을 자신의 일인 소설로 옮겨 이렇게 묻습니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은 과연 문학에 얼마나 가치를 둘까? 인공지능이 '문학에 특별한 관심은 없고 시키니까 합니다'라면서 명작을 하루에 288편을 써낸다면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인공지능 평론가들이 바로 그 작품이야말로 궁극의 소설이라며 감탄하는데 나는 그걸 이해하기는커녕 살아서 다 읽어낼 수조차 없다면?... 그런 때 내가 소설을 여전히 내 일로 여길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수학으로 옮겨 놓으면 필즈상 수상자들이 말한 간격과 같은 모양이 됩니다. 증명은 하루에도 수백 편씩 쏟아지는데 수학자들은 그것을 이해하기는커녕 다 읽어 낼 수조차 없다면, 그 일은 여전히 수학자의 일일까요. 위대함이나 의미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일을 사람들은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 차례

 

수학계는 답을 내리기보다 시도부터 시작했습니다. 타오는 수학을 왜 하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AI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저자는 어떻게 표시하고 검증은 어떻게 공개할지를 수학자들이 직접 정해야 하며 외부 기업에 맡겨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AI 사용과 저자 표시의 원칙을 세우려는 라이덴 선언 같은 움직임도 긍정적으로 봅니다. 

 

수학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질문은 수학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2016년에 바둑이 먼저 겪은 일이 올해 수학에 도착했고, 과학을 비롯해 지식을 만드는 다른 일들에도 곧 도착할 것입니다. 도착 시각만 다를 뿐, 모두가 내리는 역입니다.

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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