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주의 과학』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괜히 마음이 허전해진다는 가을, 이번 호에서는 평소에는 쉽게 지나칠 법한 두 가지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하나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생명, 다른 하나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라는 감정입니다. 먼저 이준호 서울대 교수님의 발표를 통해 작은 생물이 어떻게 인간과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는지 만나봅니다. 이어서는 외로움을 단순한 기분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의 행동과 건강, 그리고 혼자 살아가는 방식까지 조금 넓혀 살펴보겠습니다. 작은 것일수록 가까이 들여다봐야 보이고, 익숙한 감정일수록 한 번쯤 낯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겠죠. 이번 주 『요주의 과학』과 함께 가을에 어울리는 두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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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드릴 발표집의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님입니다. 교수님은 30년 넘게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을 연구해 온 유전학자로, 국내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이끌며 행동과 신경회로, 신경망의 변화를 탐구해 오셨습니다. 조금 특별한 인연도 있습니다. 이 교수님은 학창 시절 진주의 독지가 김장하 선생님의 장학금으로 공부한 ‘김장하 장학생’이시기도 합니다.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도 출연해 그 인연을 소개하셨죠. 교수님은 처음부터 생물학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TECH) 박사과정에서 우연히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시작했고, 당시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에게 진로 조언을 구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라(Stick to what you are doing now).” 그 말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36년째 같은 작은 생물을 들여다보고 계신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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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ch’s Almanack (1882), WormAtlas (Altun & Hall,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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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벌레라니!
이준호 교수님께서는 수많은 생물 가운데 왜 굳이 ‘worm’을 연구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사람이 곧 벌레이기 때문입니다.” 꽤 궁금증을 자아내는 표현입니다. 사람이 벌레라니요? 그런데 이 표현의 뿌리는 찰스 다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윈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구했던 대상이 지렁이였고, 이 연구가 발표되자 이란 잡지에 만화 하나가 실렸다 해요. 찰스 다윈이 가운데에 있고, 진화의 시계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 끝에 벌레가 나오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밑엔 “MAN IS BUT A WORM”, 즉 ‘인간은 결국 벌레일 뿐’이라는 문구가 등장했습니다. 사람에게 약 2만 개의 유전자가 있다면 예쁜꼬마선충에게도 비슷한 수의 유전자가 있고, 그중 상당수는 서로 닮아 있습니다. 몸길이는 1mm 남짓하지만 신경세포도 약 300개나 갖고 있어 발생, 행동, 신경계의 원리를 연구하기에 훌륭한 모델이죠. 실제로 이 교수님은 움직이지 못하는 돌연변이 선충에 생쥐의 유전자를 넣어 운동 기능이 회복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사람이 곧 벌레라더니, 이번에는 ‘생쥐도 곧 벌레’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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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실험에서 새로운 질문이 태어나다 박사과정 시절, 이 교수님은 잘 움직이지 못하는 돌연변이 예쁜꼬마선충의 unc-101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유전자와 세포 안의 ‘물류센터’ 역할을 하는 골지체가 관련 있을 것이라고 보고, 골지체의 작동을 방해하는 약물인 브레펠딘 A(Brefeldin A)를 선충에게 투여해보기로 했죠. 문제는 이 약물이 물에 잘 녹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에탄올에 녹여 선충에게 먹였습니다. 결과는 기대한 대로였습니다. 선충들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역시 골지체에 문제가 생기면 unc-101 돌연변이처럼 움직임에 이상이 생기는구나!” 싶으셨죠. 하지만 과학에서는 대조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약물을 넣지 않고 에탄올만 먹여봤습니다. 그런데… 선충들이 또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약물 때문이 아니라, 에탄올에 취해 쓰러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원래 가설을 검증하려던 실험은 그렇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몇 년 뒤, 이 황당한 실패가 전혀 새로운 질문으로 되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술을 먹어도 잘 취하지 않는 선충도 있지 않을까?” 교수님께서는 실제로 알코올에 강한 돌연변이를 찾아냈고, 관련 유전자에는 한국말로 ‘주당(JUDANG)’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연구는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상 밖의 결과를 단순한 ‘실패’로 끝낼 것인지,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갈 것인지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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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도 ‘히치하이킹’을 합니다 예쁜꼬마선충은 먹이가 부족하고 환경이 나빠지면 다우어(dauer)라는 휴면 유충 상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몸을 세우고 고개를 흔들며 지나가는 달팽이나 쥐며느리, 초파리 등에 올라타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합니다. 말 그대로 벌레의 ‘히치하이킹’, 닉테이션(nictation)입니다. 이준호 교수팀은 이 행동이 종의 확산을 위한 이동 전략이며, 특정 IL2 신경세포가 이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어 선충의 머리를 50nm 두께로 약 1,500장 잘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하고, 신경세포의 연결을 하나씩 추적해 뇌의 연결지도인 커넥톰(connectome)을 만들었습니다. 성체와 다우어 상태를 비교하니, 다우어에서는 어떤 신경 연결이 새로 생기거나 사라지고, 기존 연결도 강해지거나 약해졌습니다. 환경에 따라 뇌의 배선 자체가 달라진 것이죠. 그래서 이준호 교수님은 다우어를 “꼬마선충계의 피터팬”이라고 표현합니다. 겉모습은 어린 유충에 머물러 있는데, 머릿속은 오히려 복잡해져 있기 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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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벌레를 보다 보니, 결국 인간이 보이네요 처음에는 그저 술에 취한 벌레였고, 고개를 흔드는 이상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현상을 끝까지 따라가자, 유전자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신경세포로, 다시 뇌 전체의 연결망으로 연구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집은 예쁜꼬마선충 설명서라기보다, 한 과학자가 질문을 키워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준호 교수님께서는 '과학은 작은 질문에서 더 큰 질문으로 가는 길이자, 호기심으로 시작해 끈기로 완성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1mm 남짓한 작은 생물을 30년 넘게 바라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술에 취한 벌레에서 뇌의 연결지도까지. 이준호 교수님의 발표집에서 그 뜻밖의 여정을 직접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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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퇴근 길, 환한 편의점 진열대 위 맥주 한 캔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직은 생쥐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와 솔크연구소 연구진은 수컷과 암컷 생쥐를 혼자 또는 무리 지어 살게 한 뒤, 약 2주간 물과 알코올 15%의 술을 마음대로 고르게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혼자 지낸 수컷 생쥐는 술을 점점 더 많이 마셨습니다. 물보다 술을 고르는 경향도 강해졌죠. 그런데 암컷 생쥐는 정반대였습니다. 혼자 지내자 오히려 술을 덜 마셨습니다. 수컷 생쥐의 뇌에서는 감정과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기저외측 편도체’와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내측 전전두엽’을 잇는 신경 회로가 고립 후 더 민감해졌습니다. 연구진이 광유전학 기술을 사용해 빛으로 이 회로를 켜자 무리 생활을 하던 생쥐도 술을 더 마셨고, 반대로 회로를 억제하자 혼자 지낸 생쥐의 음주량은 줄었습니다. 외로움과 술 한잔 사이를 잇는 뇌 신경 회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죠. 암컷에게 정반대의 변화가 나타난 이유는 아직 모릅니다. 생쥐의 뇌를 곧바로 사람에게 대입할 수도 없죠. 그래도 늦은 밤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보면, 혼자 술을 홀짝이는 생쥐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만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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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혼자만의 문제일까 영국은 2018년부터 이른바 ‘외로움부 장관’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도 외로움을 시급한 보건 위협으로 지목하고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한 사람의 외로운 마음에 국가와 국제기구까지 나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느끼지만, 혼자 만들어지는 감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시간과 주거 형태, 소득과 가족관계, 이웃과 공동체가 촘촘히 얽혀 우리가 얼마나 자주 만나고, 누구에게 기대며,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합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누구도 온전히 혼자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김수영 서울대 교수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1인 가구의 삶을 따라가며 그 아래에 놓인 사회의 구조를 살펴봅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도 몇 번씩 뜨끔합니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인생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구가 여럿일 수는 있어도 인생은 여전히 혼자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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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도 혼자 살면 라면만 먹는다 혼자 살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거창한 인생 계획이 아니라 밥 한 끼입니다. 책에 인용된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에서 1인 가구의 아침 결식률은 다인 가구보다 훨씬 높았고, 하루 한 번 이상 외식하는 비율도 35.4%에 달했습니다. 라면과 패스트푸드는 더 자주 먹는 반면, 과일과 생선 등은 덜 먹었습니다. 문제는 요리 솜씨가 아닙니다. 책의 표현처럼 “셰프도 혼자 살면 라면만 먹게” 됩니다. 나 한 사람 먹자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밥을 차린 뒤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냄비가 갑자기 아주 무거워집니다. 누군가를 위해 차리는 밥에는 돌봄이라는 의미가 붙습니다. 하지만 혼자 먹는 밥은 쉽게 ‘끼니를 때우는 일’로 쪼그라듭니다. 청소와 빨래도 함께 살아갈 공간을 가꾸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비'처럼 느껴집니다. 공들여 밥을 지어도 “잘 먹었어”라고 말해줄 사람이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은 생각보다 높은 요리 방지턱입니다. 식탁에서 빠진 돌봄은 결국 몸에서 청구서로 돌아옵니다. 서울시 조사에서 1인 가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31.5%로 다인 가구의 11.8%보다 약 2.7배 높았습니다. 42만여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은 심혈관질환 위험과 그로 인한 사망 위험이 각각 22%, 23% 높았습니다. 밥 한 끼를 챙기는 일은 사소해 보입니다. 그러나 매일 나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작은 노동이 무너지면,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헐거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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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은 ‘홀몸’을 원한다 1인 가구의 증가를 단순히 “요즘 사람들은 혼자가 편한가 보다”라고 설명하면 중요한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노동시장이 가족과 함께 살기 어려운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동시장은 완전고용에 가까웠고, 한 번 취업하면 그 직장을 토대로 결혼과 주거, 자녀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에서 취업은 도착점이 아니라 잠시 숨 돌리는 정류장이 됐습니다. 일자리를 얻은 뒤에도 다음 이직과 퇴직, 새로운 기술과 자격증을 준비해야 합니다. 전체 노동자의 30%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임금은 정규직의 60~70% 수준에 머뭅니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은 이런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사회를 ‘위험 체제’로 보았습니다. 사회가 떠안던 위험이 개인에게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경력을 설계하고 경쟁력을 갱신해야 합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평생 자기계발이 들어섰습니다. 그 사이 가족을 만드는 일은 자꾸 뒤로 밀립니다. 높은 생산성, 탄력적인 노동시간, 갑작스러운 출장, 잦은 이직과 빠른 퇴직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은 돌봐야 할 사람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노동자입니다. 오늘날의 노동시장은 ‘홀몸’을 원합니다. 1인 가구는 경쟁적인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의 자기착취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은 금융·법률·컨설팅·연구직처럼 높은 보상을 주는 대신 노동자의 시간과 헌신을 끝없이 요구하는 일자리를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일자리는 능력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일을 최우선에 둘 준비까지 요구합니다. 더 무서운 점은 이제 상사가 굳이 채찍을 들 필요도 없다는 것이죠. 우리는 자아실현, 자기성취, 자기계발,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야근을 꿈을 향한 노력이라 부르고, 주말에도 기꺼이 노트북을 엽니다. 타인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자기착취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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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다면, 정말 돈이 부족한 걸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것을 미뤄온 한국 사회에는 농담 이상의 설득력을 가진 문장입니다. 물론 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1인 가구에서는 늘어난 소득이 삶의 질과 돌봄으로 자동 변환되지 않습니다. 1인 가구가 돈으로 사는 것은 대부분 삶의 질이 아니라 편리함입니다. 배달 음식은 저녁을 차리는 시간을 줄여주지만, 그 시간을 쉬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세탁 서비스가 아껴준 한 시간에는 또 다른 회의와 업무가 들어옵니다. 결국 우리는 저녁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야근할 한 시간을 더 산 셈입니다. 가사에서 절약한 시간마저 노동과 자기계발로 흡수되면 일상의 돌봄은 계속 뒤로 밀립니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기 위해 오늘의 나는 대충 먹고, 덜 자고, 아픈 몸을 미뤄둡니다. 삶이 편리해질수록 오히려 자신을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게 되는 역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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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도, 혼자 견디지는 않도록 해법의 첫 실마리는 모두를 다시 전통적인 가족 안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족의 형태와 관계없이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가족 바깥에서도 서로에게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 아플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계망, 집과 직장 밖에서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는 ‘제3의 장소’, 누군가를 돌볼 시간을 빼앗지 않는 노동 환경이 필요합니다. 혼자는 하나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고립까지 필연일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 오늘, 잘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건네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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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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