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주의 과학』입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해지면서, 이제는 정말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데요. 계절이 바뀌듯 과학기술의 세계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작고, 더 빠르고, 더 가볍고, 더 효율적인 기술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소재와 기술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그중에서도 새로운 물성을 만들어내는 양자물질과, 양자역학의 원리를 계산에 활용하는 양자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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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립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님은 그래핀을 비롯한 저차원 물질의 전자적 특성과 양자현상을 연구해 온 세계적인 응집물질물리학자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학교에서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차원 물질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자적 특성과 새로운 물리현상을 밝혀온 공로로 호암상 과학상(2008), 올리버 E. 버클리 응집물질물리학상(2014), 벤저민 프랭클린 물리학상(2023) 등 세계적인 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주 얇은 물질 속에서 새로운 물리의 가능성을 찾아온 연구자, 김필립 교수님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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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한 층이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 원자 한 층짜리 물질이 반도체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요? 최근 2차원 물질을 활용한 트랜지스터가 실제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구현되면서, 오랫동안 ‘꿈의 소재’로 불려온 2차원 물질이 조금씩 실험실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얇은 물질은 어떻게 새로운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김필립 교수님은 그래핀을 비롯한 2차원 물질을 통해 원자 수준에서 물질의 성질을 조절하는 가능성을 소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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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물질인데, 왜 성질이 달라질까? 물질의 성질은 단순히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원자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성질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원자 한 층 정도로 얇은 2차원 물질(2D materials)을 여러 겹 쌓거나, 층 사이의 각도를 조금씩 바꾸면서 새로운 양자현상을 만들어내는 연구가 활발합니다. 쉽게 말하면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같은 블록이라도 어떻게 쌓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구조가 만들어지듯, 원자 수준에서도 물질의 구조를 바꾸면 새로운 물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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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 비틀었을 뿐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래핀(graphene)입니다.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루어진 그래핀은 뛰어난 전기적·기계적 특성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래핀 두 장을 겹친 뒤 아주 조금 비틀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특정한 각도, 이른바 ‘매직 앵글(magic angle)’에서 그래핀을 겹치면 전자의 움직임이 크게 느려지고 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강해집니다. 그 결과 절연체나 초전도체와 같은 새로운 상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두 층 사이의 작은 비틀림은 무아레 패턴(moire pattern)이라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고, 이 패턴이 전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줍니다. 마치 촘촘한 격자 두 개를 살짝 겹쳤을 때 새로운 무늬가 나타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핀을 살짝 비틀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물리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작은 각도의 변화가 새로운 양자세계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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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도 ‘조립’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서로 다른 2차원 물질을 쌓는 반데르발스 이종구조(van der Waals heterostructure)로도 이어집니다. 그래핀이나 질화붕소(hBN), 전이금속 디칼코게나이드(TMD)처럼 얇은 2차원 물질들을 한 층씩 포개면, 서로 다른 물질의 특성이 결합해 새로운 전자적·광학적 특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원자 수준에서 구조를 조절하며 새로운 물성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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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 물질, 진짜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 이런 2차원 물질은 이제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원자 몇 층 수준으로 얇으면서도 전자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어, 트랜지스터를 더욱 작게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 소재의 한계를 넘어설 후보로 거론됩니다. 물론 실험실에서 작은 소자를 만드는 것과 실제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웨이퍼 전체에 물질을 균일하게 만들고,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는 제조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TSMC, ASML, Imec가 300mm 웨이퍼 위에 2차원 물질 기반 트랜지스터를 구현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아직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2차원 물질이 실험실에서 실제 반도체 제조공정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2차원 물질이 보여주는 새로운 물리와 가능성이 더 궁금하시다면, 김필립 교수님의 발표집과 강연 영상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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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유엔도 이를 기념해 2025년을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0년을 기념하는 사이, 양자기술을 둘러싼 질문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심은 주로 “양자컴퓨터가 정말 만들어질까"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제 질문은 조금씩 “언제 쓸 수 있을까?”, “어디에 먼저 쓸까?”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맥킨지는 2025년 보고서에서 양자기술이 ‘개발’에서 ‘배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고, 2026년에는 양자컴퓨팅이 ‘상업적 전환점’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꺼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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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는 왜 아직 우리 책상 위에 없을까?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정보를 다루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비트(bit)는 0 또는 1 가운데 하나를 갖지만, 양자컴퓨터의 큐비트(qubit)는 양자역학적 상태를 이용해 기존 방식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계산을 수행할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문제는 이 상태가 엄청나게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진동이나 온도 변화, 미세한 제어 오차만으로도 계산이 틀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장치에 만들어진 물리 큐비트의 숫자를 마냥 늘리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컴퓨터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 물리 큐비트를 묶어 서로의 오류를 계속 감시하고 바로잡아 하나의 믿을 만한 큐비트처럼 작동하게 만든 것이 논리 큐비트(logical qubit)입니다. 현재는 논리 큐비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의 물리 큐비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결함허용(fault-tolerant) 양자컴퓨터란 오류가 전혀 없는 컴퓨터가 아니라, 오류가 생겨도 계속 고쳐가며 긴 계산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입니다. 그래서 최근 경쟁의 초점도 “누가 큐비트를 많이 만들었느냐”에서 “누가 오류를 통제해 쓸 만한 논리 큐비트를 만들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2024년 말 Willow 칩을 통해 큐비트 규모가 커져도 오류를 오히려 줄일 수 있음을 실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업계의 경쟁도 단순히 큐비트 수를 늘리는 데서 벗어나, 큐비트를 안정화하고 오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정하느냐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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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시장의 움직임도 이를 보여줍니다. 전 세계 300개가 넘는 기업이 이미 양자컴퓨팅 기업과 협력하고 있으며, 일부는 실험을 넘어 실제 업무에 적용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2025년 양자기술 스타트업 투자는 126억 달러로 전년의 6.3배로 늘었고, 그중 90%가 양자컴퓨팅에 집중됐습니다. 특히 공공자금 비중이 크게 줄고 민간 자본이 주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아직 양자컴퓨팅 기업의 전 세계 매출은 2025년 10억 달러를 넘어선 정도입니다. 하지만 맥킨지는 양자컴퓨팅이 화학·신약개발·금융·물류 등의 문제 해결 방식을 바꾸면서 2035년까지 최대 2조7천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잠재력이 있다고 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자컴퓨터 자체의 시장보다 기존 산업의 계산 방식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느냐입니다.
슈퍼컴퓨터를 없애기보다는 옆에 붙는다 그렇다고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를 통째로 대체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고전 컴퓨터와 AI가 대부분의 계산을 맡고, 양자컴퓨터가 특히 어려운 부분만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현실적입니다. 복잡한 분자 시뮬레이션이나 물류 최적화, 금융의 위험 계산 등이 대표적인 후보입니다. 즉 가까운 미래의 양자컴퓨터는 개인용 PC라기보다, 슈퍼컴퓨터 옆에서 특정 문제를 푸는 특수 가속기에 가까울 가능성이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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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팅·양자통신·양자센싱이라는 양자기술의 세 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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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양자기술’은 양자컴퓨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책적으로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구분해야 합니다. 흔히 ‘양자기술’이라고 한꺼번에 부르지만 실제로는 양자컴퓨팅·양자통신·양자센싱이라는 세 분야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자컴퓨팅이 아직 오류정정이라는 높은 산을 오르고 있다면, 양자통신은 이미 ‘전환’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현재 인터넷과 금융망에서 사용하는 공개키 암호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NIST는 2024년 양자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양자내성암호(PQC) 표준을 확정했고, 주요국들은 국가 핵심 인프라의 암호체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에 훔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가로챈 기밀 데이터를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양자컴퓨터로 해독하는 ‘지금 수집하고, 나중에 푼다(harvest now, decrypt later)’ 전략의 위협 때문에 전환을 서두를 이유가 이미 생겼습니다. 반면 양자센싱은 세 분야 가운데 현실 세계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있습니다. 원자와 광자의 양자적 성질을 이용해 시간, 중력, 자기장, 관성을 기존 센서보다 훨씬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입니다. 초정밀 원자시계는 이미 실제 배치 단계에 들어섰고, 중력계·자기계·관성센서도 국방·항법·의료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컴퓨팅은 ‘언제 충분히 강력해질 것인가’, 통신은 ‘언제까지 전환을 끝낼 것인가’, 센싱은 ‘어떻게 제품으로 만들어 현장에 넣을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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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토끼, 같은 방법으로 잡으면 안 됩니다 이 차이는 한국의 전략에서도 중요합니다. 양자라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세 분야에 같은 방식으로 자원을 투입해서는 안 됩니다. 양자컴퓨팅에서는 미국 빅테크와 큐비트 숫자만으로 경쟁하기보다, 기술 규모가 커질수록 중요해지는 레이저·극저온 장비·제어전자·정밀 제조 같은 소부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실에서는 큐비트와 오류율이 핵심이었다면, 산업화 단계에서는 장비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공급할 수 있느냐가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됩니다. 반도체와 정밀제조라는 한국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양자통신에서는 발명보다 실행과 표준이 중요합니다. 국내 통신사들은 QKD와 PQC 실증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이제는 국가 핵심 인프라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PQC로 전환할지 구체화하고, 국제표준과 국산 기술을 연결하면서 관련 칩과 장비까지 내재화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상대적으로 상용화에 가까운 양자센싱에서는 전략이 또 달라야 합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원자시계와 양자중력계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연구 성과를 더 쌓는 것만큼 장비를 작고 튼튼하게 만들고, 국방·항법·의료 현장에서 시험하고, 공공조달을 통해 초기 시장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양자컴퓨팅에는 장기 R&D와 소부장, 양자통신에는 신속한 전환과 표준, 양자센싱에는 제품화와 조달이라는 서로 다른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세 분야를 관통하는 더 큰 숙제가 있습니다. 공급망, 표준, 그리고 인재입니다. 기술이 연구실을 벗어나 산업으로 갈수록 경쟁은 좋은 논문과 놀라운 실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필요한 장비를 만들 기업이 있는지, 국제표준을 만드는 자리에 들어가 있는지, 연구 성과를 제품으로 바꿀 엔지니어가 충분한지가 점점 중요해집니다. 양자 경쟁의 승자는 어쩌면 가장 먼저 놀라운 실험에 성공한 나라가 아니라, 그 성과를 가장 빠르게 산업 생태계로 옮길 준비가 되있는 나라가 될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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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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