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레터

[요주의 과학] vol.37 대한민국 극한 다이어트💦, '탄소 40%' 빼기

2026. 07. 14

 

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주의 과학』입니다.

연일 체감 온도 35도를 오르내리는 가마솥더위와, 유럽 주요 관광지마저 폐쇄시킨 극심한 폭염 뉴스를 접하다 보면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피부로 체감하게 됩니다. 전 세계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해법을 고민하는 지금, 이번 호에서는 끓어오르는 지구를 식히기 위한 '두 가지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법'을 교차해 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과학기술과 산업 구조의 혁신을 통해 거대한 탄소 장벽을 넘으려는 인류의 노력이며, 두 번째는 뇌 한 번 가져본 적 없이 수억 년 전부터 묵묵히 탄소를 다루며 가혹한 환경에 적응해 온 위대한 초록빛 동료, 식물의 경이로운 지능입니다. 가장 분주한 기술의 최전선과 가장 고요한 자연의 지혜가 만나는 이번 주 『요주의 과학』,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몸무게 40%를 빼는 것만큼 가혹한 미션,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이번 호의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남기태 교수님입니다. 자연의 원리를 모방해 탄소중립 에너지와 신소재 기술을 개발하는 세계적인 연구자이십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탄소중립기술특별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신 남기태 교수님은, 탄소중립이 단순한 국내 이슈를 넘어 국제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거대한 글로벌 트렌드임을 짚어주십니다. 교수님과 함께, 벼랑 끝에 선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을 직시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제로 카본(Zero Carbon)’의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몸무게 40% 감량에 비유되는 혹독한 다이어트

 

우리나라 국민은 1년에 인당 약 12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정유 및 석유화학 산업 규모가 큰 상위 국가들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의 배출량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하는 추세로 접어들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배출량이 상승하는 곡선을 그리고 있어 그 상승세를 꺾는 것조차 벅찬 상황이죠.

Global Carbon Budget (2025)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줄이겠다고 선언했는데 , 남 교수님은 이 목표가 마치 "우리 몸무게를 40% 줄이는 것만큼 어려운 이슈"라고 비유합니다. 특히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에게 탄소 감축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과제입니다. 단순히 공장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제품의 생산부터 최종 소비까지 가치 사슬 전 과정을 다루는 '스코프(Scope) 3' 차원의 배출량 관리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등 선진국들이 이미 전 생애주기 평가(LCA)를 통해 촘촘한 탄소 장벽을 세우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독자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제조업 강국의 새로운 생존 공식

 

그렇다면 제조업 중심의 대한민국은 이 거대한 벽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요? 남기태 교수님의 발표집에서는 대한민국이 탄소중립 시대에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크게 다섯 가지 전략을 제안하고 있는데요, 그중 핵심적인 세 가지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 기후 혁신 기술의 테스트베드인 '에너지 파운드리(Energy Foundry)'로 구축하자는 제안입니다. 대만이 반도체 파운드리로 세계를 선도하듯, 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 탄탄한 제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에너지 혁신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이러한 인프라와 더불어, 이산화탄소를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하는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포집한 탄소로 연료나 플라스틱을 만드는 등 '새로운 탄소 순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상용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인 '가격'을 낮춰 진입 장벽을 허무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흥미롭게도 교수님은 도예가와 협업하여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흙으로 도자기 꽃병과 타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탄소를 활용한 재료가 일상에서 충분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과 인프라는 마침내 '과학기술 외교'를 통해 해외 무대로 확장됩니다. 정부의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수정안에서 해외 감축분을 늘린 것을 두고 책임을 떠넘긴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교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우즈베키스탄에 매립가스 발전소를 건설하거나 몽골에 메탄가스 포집 시설을 설치했던 사례처럼, 오히려 우리의 우수한 기술력으로 국제적인 탄소 감축을 이끌어내고 감축분도 인정받는 가장 능동적인 외교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발표집에는 산업 전반에 쓰이는 염기 물질(수산화나트륨 등)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방안 매우 현실적인 제안들이 담겨 있습니다. 막연한 구호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 시스템에 맞춘 탄소중립 로드맵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발표집 전문을 꼭 확인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뇌 빼고 산다고, 생각도 없을까?

앞선 꼭지에서는 탄소중립을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탄소중립의 가장 오래된 실무자에게도 눈을 돌려볼 차례입니다. 인간이 탄소포집 기술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동안, 식물은 수억 년째 햇빛과 물을 이용해 대기 중 탄소를 자신의 몸으로 바꾸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든든한 동료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식물은 말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배경처럼 취급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 식물은 매 순간 주변을 감지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생존 전략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식물에게도 아침이 와요
 
(아시겠지만) 식물은 뇌가 없습니다. 뉴런도, 중앙신경계도 없습니다. 하지만 뇌가 없다는 것과 정보를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해바라기는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맞춰 잎의 각도와 배치를 조정합니다. 심지어 며칠 동안 어둠 속에 놓여도 태양이 어느 방향에서 떠올랐는지에 대한 기억을 한동안 유지합니다. 이를 인간처럼 '미래를 계획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식물의 현재에는 과거의 경험과 다음 아침에 대한 예측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손을 대면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도 흥미롭습니다. 미모사에 자극을 반복해서 주면 처음에는 꼬박꼬박 잎을 접다가 점차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무해한 자극이라는 사실을 학습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기억'이 한 달 정도 지속됐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새로운 종류의 자극을 주면 다시 곧바로 잎을 접는다는 것입니다. 지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극을 구별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모사가 정말 ‘배웠다’고 표현해도 되는지를 두고는 여전히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에 따라 다음 반응을 바꾼다는 사실만으로도, 식물을 단순한 자동기계로 여기기는 어려워집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의 식물들
에이와님이 네 기도를 들으셨어
 
일부 연구자들은 식물의 뿌리가 동물의 머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뿌리는 중력과 수분, 온도, 영양분, 독성 물질과 장애물의 위치를 감지합니다. 그리고 어디로 뻗을지, 어느 부분의 성장을 멈출지, 지상부에 어떤 대응을 요청할지를 끊임없이 조정합니다.
 
이러한 상상력을 가장 시각적으로 잘 나타낸 예가 영화 《아바타》의 ‘에이와’라는 거대한 생체 네트워크입니다. 아바타에서는 나무와 뿌리를 통해 기억과 에너지가 흐르고, 개별 생명체의 경험이 행성 전체와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식물은 중앙 서버 한 대가 모든 것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수많은 단말기가 동시에 감지하고 판단하는 분산형 네트워크에 가깝습니다.
 
초록색 재난문자가 발송됐습니다
 
실제로 식물의 몸속에서는 전기신호가 흐릅니다. 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 상처 부위에서 신호가 발생하고, 칼슘 이온의 파동을 타고 다른 잎과 줄기로 퍼져나갑니다. 공격받지 않은 부위도 이 신호를 받아 방어물질을 준비합니다. 연구자들은 칼슘이 있을 때 빛나는 단백질을 식물에 넣어 이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평온하던 식물의 몸 안에서 형광 신호가 번쩍이며 퍼지는 모습은 거의 초록색 재난문자와 같습니다.
식물의 체내 재난 신호 영상
이 과정에는 동물의 뇌에서도 발견되는 글루탐산GABA 같은 물질이 관여합니다. 전혀 다르게 생긴 생명체들이 세포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할 때 뜻밖에 비슷한 부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식물도 술에 취합니다. 물론 화분이 회식 다음 날 해장국을 찾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알코올은 식물의 생리와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며, 에테르 같은 마취제에 노출된 미모사나 파리지옥은 전기신호와 움직임이 억제됩니다. 마취 성분을 제거하면 다시 반응을 시작합니다.
 
동물은 도망치고, 식물은 해결한다
 
동물과 식물의 가장 큰 차이는 '행동'의 유무입니다. 동물은 위험이 닥치면 도망쳐야 했습니다. 빠르게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기 위해 감각기관과 신경계를 머리에 집중시켰습니다. 말하자면 중앙집권형 의사결정 체계입니다.
 
식물은 도망갈 수 없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린 채 더위와 추위, 가뭄과 홍수, 포식자의 공격을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기관이 모든 것을 지휘하기보다 몸 전체에 기능을 분산시켰습니다. 잎이나 가지 일부가 사라져도 전체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남은 부분들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동물이 위험을 피하는 데 능하다면, 식물은 위험을 끌어안은 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합니다. 식물에게는 빨리 달아나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식물은 빛과 중력, 습도와 온도, 토양과 대기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합니다. 빛을 향해 줄기를 기울이고, 물이 있는 쪽으로 뿌리를 뻗고, 지지대를 발견하면 덩굴손으로 움켜쥡니다. 환경에 따라 가지를 내고 잎을 버리며 꽃을 피우는 시기까지 바꿉니다. 이를 표현형의 변화를 통해 환경에 반응한다고 부릅니다. 식물의 몸은 완성된 제품이라기보다,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고쳐 쓰는 초안에 가깝습니다.
 
기억은 꼭 머릿속에만 남는가
 
뇌가 없는 식물의 학습과 기억은 세포에 남습니다. 식물이 더위나 가뭄, 병원균 같은 스트레스를 한 번 겪으면 특정 단백질이나 호르몬, 대사물질이 세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같은 위험이 다시 찾아왔을 때 이전보다 빠르고 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식물의 세포는 비상사태가 끝난 뒤에도 매뉴얼을 완전히 덮지 않고, 필요한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둡니다.
 
더 오래가는 기억은 DNA에도 흔적을 남깁니다. DNA의 문장 자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을 읽고 어느 부분을 덮어둘지 표시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후성유전학입니다. 메뚜기의 변신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평소 홀로 살아가는 메뚜기가 환경 변화로 떼로 몰리면 날개와 체형이 변하고 행동도 훨씬 공격적으로 달라집니다. DNA의 글자가 갑자기 다른 종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같은 유전정보를 읽는 방식이 달라진 결과입니다.
 
식물 역시 자신이 겪은 환경을 세포와 DNA 주변에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이후의 성장과 행동을 조절합니다. 식물에게 몸은 기억을 보관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기억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식물에게 지능이 있습니까?
 
식물에게 지능이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식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가 아직 지능이 무엇인지 정확히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지나치게 해석해 식물에게 인간과 같은 감정이나 의식을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전기신호가 흐른다고 해서 식물이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고, 기억한다고 해서 추억에 잠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능을 환경을 인지하고, 경험에서 배우고, 기억을 남기며,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본다면 식물에게 지능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식물은 이 모든 일을 뇌 없이, 이동하지 않고, 몸 전체를 이용해 수행합니다.
 
초록색 지구에서 식물을 이해한다는 것
 
기후위기를 비롯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식물을 단순한 탄소흡수 장치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극심한 더위와 가뭄, 새로운 병원체에 견디는 작물을 만들고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식물이 환경을 감지하고 기억하며 스스로를 바꾸는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식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식물을 인간처럼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그 자체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도망치지 않고, 하나의 중심도 없이, 몸 전체로 문제를 해결하는 식물을 제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생명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는지, 그리고 이 유기적인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금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뉴스레터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수신거부]를 클릭하신 후 메일주소를 발송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