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레터

[요주의 과학] vol.35 과학을 다루는 정책, 그 결정도 과연 과학적일까요?

2026. 06. 16

 

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과학은 흔히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끊임없는 반증과 합의를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유연한 과정에 가깝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 앞에서는 언제든 기존의 결론을 수정할 수 있기에 우리는 과학을 더욱 신뢰하죠.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정작 그 과학을 어디에 쓰고, 얼마를 투자할지 결정하는 '과학기술 정책'은 과연 그만큼 과학적일까요?

 

이번 호에서는 과학과 정책이 만나는 아주 특별한 최전선으로 안내합니다. 가장 먼저, 서울대학교 이정동 교수님과 함께 직관과 경험을 넘어 숫자로 말하는 '정책의 과학화'를 들여다봅니다. 이어서 최근 화제의 책 『정책실의 과학자들』을 통해, 연구실의 비평가를 넘어 '일을 되게 만드는 참모'로 변신한 과학자들의 생생한 분투기를 전합니다.

 

말뿐인 구호가 아닌, 진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과학기술 전략의 세계로 함께 떠나보시죠.

정책실에 당도한 ‘과학적 증거’들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미래를 위해 특정 분야에 1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곤 합니다. 하지만 그 액수와 방향이 어떤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된 것인지, 혹은 관성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히 답하기는 쉽지 않을 때가 있죠. 이번 호에서는 과학기술 정책이 개인의 직관을 넘어, 데이터와 증거를 바탕으로 한 ‘과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화두를 던져보려 합니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교수이자 기술경제 및 혁신정책 분야의 권위자인 이정동 교수님입니다. 교수님은 국내 기술경영 및 혁신정책 연구를 이끌며, 《축적의 시간》, 《축적의 길》 등 저서를 통해 대한민국 기술 성취와 한계를 통찰해오셨습니다. 이정동 교수님과 함께, 과학 정책의 과학화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 전략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주장이 아닌 ‘증거’로 그리는 혁신과 협력

이정동 교수님은 과학 정책 역시 주장이 아닌 ‘증거’를 갖추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단순히 유망해 보이는 분야에 예산을 늘리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통해 기술 확산의 패턴을 세밀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이번 발표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혁신과 협력’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한 지표들입니다. 우선 ‘기술 공간(Technology Space)’을 나타낸 그림이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의 기술 생태계를 지도로 펼쳐본 것인데요. 지도 위에 콕콕 찍힌 '파란 점'들은 해당 국가가 강점을 지닌 기술 분야를 뜻합니다. 이 파란 점들의 분포를 겹쳐보면 우리 산업이 어떤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나아가 상대 국가와 서로의 강점을 어떻게 보완하며 협력할 수 있을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죠. 개인적인 느낌에 의존하는 대신, 정밀한 지도를 펼쳐놓고 최적의 답을 찾는 방식입니다.

발표집 발췌

또한, 이정동 교수님 연구실에서 자체 개발한 ‘협업 시너지 지수(Collaboration Synergy Index)’도 흥미롭습니다. 반도체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산업에서 한국이 어느 나라와 손을 잡아야 할지, 이 지수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거든요.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협력 파트너와 전략적 포인트를 짚어주는 도구입니다. 반도체 부문에서 한국과 완벽한 시너지를 낼 국가는 과연 어디였을까요?

 

이 밖에도 과학기술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채로운 과학적 증거들이 발표집 안에 담겨 있습니다. 흥미로운 결과들은 발표집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경험’을 넘어 ‘검증’으로

 

과학기술 정책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성보다는, 좀 더 투명하고 객관적인 지표 위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예산 투입이 국가 전체에 어떤 파급력을 미칠지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대가 온 만큼,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져야 하겠죠. 단순한 주장이 아닌, 재현과 반증이 가능한 과학적 증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과학기술 정책의 출발점이 아닐까요? 데이터가 가리키는 기술 정책의 구체적인 해답을 발표집 전문에서 직접 만나보시죠.

과학자, 정책실에 입장했습니다

좋은 데이터와 증거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예산의 언어로 바꾸고,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짧은 시간 안에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출간된 『정책실의 과학자들』은 바로 그 세계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과학자였는데요, 이제 참모입니다
 
특히 위원회나 자문회의 등을 통해 정책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과학기술자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아는 과학기술의 언어를 어떻게 정책의 언어로 바꿀 수 있을까?”
 
정책실의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짧으면 몇 달, 길어야 1~2년입니다. 게다가 책에서 말하듯, “그 자리는 배우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과학자는 연구실의 비평가로만 머물 수 없습니다. 자기 전공을 훌쩍 넘어서는 과학기술 의제를 다루고, 비평을 넘어 ‘일을 되게 만드는 사람’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모 출신 연구자인 저자들은 자신들이 현장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고민을 정리해,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동료들에게 작은 길잡이로 건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정책 경험담이라기보다, 연구실의 언어와 정책실의 문법 사이를 건너려는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실전 안내서에 가깝습니다.
책이 제시하는 R&D 정책의 핵심은 두 단어로 압축됩니다. 축적과 시너지입니다. 국가는 핵심 역량을 제대로 쌓고 있는가. 정부, 대학, 출연연, 기업은 서로의 힘을 더하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을 붙잡으면 과학기술 정책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집니다.
 
기술은 정권보다 오래 자랍니다
 
과학기술은 오늘 심은 씨앗이 십수 년 뒤에야 열매를 맺는 세계입니다. 누군가는 시작하고, 누군가는 이어받고, 또 누군가는 성과를 발표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부의 업적인가”가 아닙니다. 그 사이 무엇이 축적되었고, 어떤 역량이 남았으며, 다음 도약을 위한 기반이 얼마나 두꺼워졌는가입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성장동력의 목록을 들여다보면, 여러 기술이 정권을 넘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름은 조금씩 바뀌어도 문제의식은 이어져온 셈입니다. 누리호도, AI도, 모든 전략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성과가 아니라 긴 시간 이어진 정책의 족보 위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술을 같은 방식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습니다. AI처럼 이미 거대한 파고가 밀려오는 분야는 전환을 가속해야 합니다. 반대로 아직 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기술은 때가 왔을 때 도약할 수 있도록 연구 기반과 인프라를 먼저 쌓아야 합니다. 기술 격차와 시장 성숙도에 따라 선도할 기술, 경쟁할 기술, 따라잡을 기술을 구분하고, 각각에 맞는 수단을 조합하는 일이 정책의 진짜 난이도입니다.
 
이제는 ‘얼마나 쓰느냐’보다 ‘어떻게 묶느냐’
 
한국의 R&D 투자는 GDP 대비로 보면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절대 규모로는 미국과 중국의 10~20% 수준에 그칩니다. 결국 우리의 전략은 단순히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잘”에 가까워야 합니다. 연구개발 투자, 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 규제 개선, 세제 지원처럼 기초 과학기술에서 산업화에 이르는 여러 수단을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정교하게 엮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정책 수단이 복잡해질수록 부처 간 역할은 겹치고, 각 부처는 국가 전체의 성과보다 자기 부처의 성과를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결과 국가 차원의 “최적의” 조합을 찾기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사업을 “최대한” 많이 꺼내는 방식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시너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합니다. 좋은 분야를 고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엇을 맡고, 어떤 수단을 묶고, 어디서 중복을 줄이며, 어떻게 함께 성과를 만들 것인지까지 설계해야 합니다.
 
정책실을 여행하는 과학기술자를 위한 안내서
 
『정책실의 과학자들』은 정책 담당자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국가 R&D 예산이 어떻게 움직이고, 좋은 과학기술 의제가 왜 부처 조정과 법제, 위원회 구조 속에서 길을 잃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유용한 안내서입니다. 오늘 소개한 책의 앞 부분이 정책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준다면, 후반부는 정부 조직, 예산 프로세스, 법령 체계, 위원회 활동이라는 현장의 도구를 손에 쥐여줍니다.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중심이 된 지금, 연구실의 언어와 정책실의 언어 사이에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간극이 있습니다. 그 간극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뉴스레터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수신거부]를 클릭하신 후 메일주소를 발송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