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레터

[요주의 과학] vol.34 AI 이후의 세상, 결국 ‘신소재’가 바꾼다

2026. 06. 07

 

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주의 과학』입니다.

 

벌써 6월, 여름의 시작입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지고,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세상을 뒤흔든 지도 어느덧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과학기술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향합니다.

 

“AI 다음은 무엇일까?”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힌트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2026 상하이 포럼 2026'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담은 참석자 대담, 그리고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과정을 조명한 저서, 『중국을 AI 리더로 만든 혁신의 설계자들』도 소개합니다.

미래는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소재로도 쓰인다

『요주의 과학』 이번호의 주인공인 김상욱 교수님은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이자 국내 나노소재 연구를 대표하는 석학으로, 그래핀2차원 나노소재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를 선도해 왔습니다. 국내외 학술 커뮤니티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여러 학회의 의장을 맡아 소재 연구 생태계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원 창업 기업인 ㈜소재창조를 설립해 연구의 산업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물질이 '소재'가 되는 순간

 

김상욱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질이 활용되는 순간, 소재가 된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이 생각나는 구절이죠?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마치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인 물질이 새로운 쓰임을 얻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처럼 실리콘은 그냥 자연계 물질이지만, 반도체 칩이 되면 컴퓨터의 두뇌가 되고 태양전지가 되면 전기를 생산합니다. 즉, 새로운 쓰임을 발견하는 순간 평범한 물질은 신소재가 됩니다.

 

인류가 석기·청동기·철기로 시대를 구분했던 것도 결국 새로운 소재가 문명을 바꿔왔기 때문입니다. AI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 강력한 컴퓨팅, 더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 더 정교한 센서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역시 결국 소재입니다.

그래핀, 아직 끝나지 않은 '꿈의 소재'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2차원 물질입니다.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지만 강철보다 강하고, 전기는 매우 잘 통하면서도 유연하기까지 하죠. 그래서 오랫동안 '꿈의 소재'라는 별명으로 불려왔습니다. 하지만 너무 얇고 민감해서 실제로 다루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김 교수님 연구팀은 그래핀이 물 위에서 스스로 빠르게 정렬해 거대한 필름을 형성하는 현상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2차원 물질을 3차원 구조로 조립하고 단층으로 분리하는데도 성공했습니다.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이 저절로 맞춰지듯, 나노 입자가 스스로 조직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발견은 그래핀 섬유, 차세대 전극, LCD 등 다양한 응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례로는 김 교수님 연구실에서 특허로 낸 '그래핀 칫솔'이 있습니다. 산화그래핀을 소량 함유한 칫솔모는 항균성과 탄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데, 실제 제품은 누적 판매량 1,000만 개 이상을 기록하며 연구실 기술이 일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올해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팀은 그래핀 산화물이 인체의 세포에는 안전하면서도 박테리아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습니다. 쉽게 말해, 화학 항생제 없이도 표면 자체가 스스로 항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의료기기, 웨어러블 바이오센서, 스마트 헬스케어 소재처럼 사람과 직접 맞닿는 차세대 인터페이스 소재로 그래핀이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꿈의 소재'라는 그래핀의 별명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입니다.

Generated by AI

빛으로 움직이는 인공 근육

 

더 놀라운 연구도 있습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술이 실제 연구실에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김상욱 교수님 연구실은 그래핀 복합소재에 빛을 비추면 스스로 수축하는 섬유형 인공 근육을 개발했습니다. 이 인공근육은 실제 생체 근육보다 빠르고 강한 성능을 보여 2022년에 Nature Nanotechnology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습니다.

 

빛만으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면, 미래의 소프트 로봇이나 웨어러블 로봇은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가 인간의 '생각'을 닮아가고 있다면, 신소재는 인간의 '감각'과 '움직임'을 확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포스트 AI 시대의 진짜 경쟁

 

더 똑똑한 알고리즘만으로는 미래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AI가 현실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선, 그것을 구현할 물질적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포스트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강력한 AI를 가진 곳이 아니라, AI가 세상과 만나는 가장 혁신적인 소재를 가진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여름, 기술의 다음 계절을 조금 먼저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김상욱 교수님의 발표집과 영상을 통해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춤추는 로봇에게 연민을 느끼는 시대? 교수와 청년이 나눈 AI 단상

지난 요주의과학 vol.32에서 잠시 전해드렸던 '2026 상하이 포럼' 소식, 기억하시나요? "똑똑해진 AI를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를 치열하게 묻던 공식 세션 밖, 원탁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요? 어려운 학술 요약본 대신, 포럼 현장에 직접 참석한 과기위 교수진과 청년 세대가 편안하게 둘러앉아 나눈 솔직담백한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단 10분, 놓치지 말아야 할 대화 포인트 3

  • "화려한 전시물은 이미 늦었다?" 기계공학자가 짚어낸 기술 변화의 진짜 속도

  • 춤추는 로봇을 보며 연민을 느끼다: 청년 세대가 던지는 인간과 AI의 교감에 대한 질문

  • 강대국 AI 패권, 그 너머의 목소리: 소외되기 쉬운 제3세계와 진정한 거버넌스의 방향

현장의 생생한 공기와 세대를 아우르는 묵직한 통찰을 단 10분 만에 흡수해 보세요!

#글로벌인사이트 #원탁의옵저버 #상하이포럼

차이나 스피드의 비결은 뭘까?

상하이포럼 참관기에서 우리는 중국 AI 혁신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중국이 생각보다 빠르다”는 익숙한 감상은 이제 “도대체 이 속도는 어디서 나오는거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출간된 『중국을 AI 리더로 만든 혁신의 설계자들』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려는 책입니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중국 현장을 직접 취재하며, 중국식 혁신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추적했습니다. 내용이 방대한 만큼, 오늘은 그중에서도 한국 독자에게 가장 예민한 주제인 반도체만 따로 떼어 소개해 보려 합니다.

미국이 팔겠다는데, 중국은 시큰둥?

 

최근 미·중 반도체 갈등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2025년 4월 엔비디아의 중국용 저사양 AI 칩 H20에도 수출 허가를 요구하며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2025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의 고사양 AI 칩 H200의 중국 수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을 계속 압박하다가는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 본능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국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에도 엔비디아의 중국 판매가 곧바로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미국은 “이제 팔아도 된다”고 손을 내밀었는데, 중국은 “그걸 꼭 사야 하나?”라는 표정을 지은 셈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그 배경에는 화웨이가 있습니다.

혁신으로 맞서는 제제

 

화웨이는 2019년 미국 제재를 정면으로 맞은 대표 기업입니다. 스마트폰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고, 첨단 반도체 접근도 막혔습니다. 그런데 화웨이는 이 위기를 비용 절감의 계기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습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매출의 15% 안팎을 R&D에 썼고, 2021년에는 이 비중이 22.4%까지 뛰었습니다. 이후에도 4년 연속 20%대의 높은 R&D 비중을 유지했습니다. 전체 직원의 절반이 넘는 11만 3천 명을 R&D 인력으로 채웠습니다.

 

그 결과가 화웨이의 AI 반도체와 시스템입니다. 화웨이의 단일 AI 칩 성능은 여전히 엔비디아 최고 제품보다 뒤처진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도 단일 칩 성능에서는 미국보다 한 세대 뒤처져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는 부족한 단일 칩 성능을 클러스터 컴퓨팅, 즉 여러 칩을 대규모로 묶어 쓰는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화웨이의 CloudMatrix 384는 384개의 어센드 910C 칩을 하나의 거대한 AI 연산 시스템으로 묶습니다. 칩 하나하나는 엔비디아보다 약할 수 있지만, 시스템 전체로 밀어붙이면 실용적인 성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접근입니다. 조금 투박하게 말하면, 인해전술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이런 집단전에 강합니다.

정부가 설계하고, 시장이 달린다

 

여기서 중국식 혁신 체계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혁신의 설계자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중국 혁신의 중심에 정부가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이를 ‘신형 거국체제’라고 부릅니다. 거국체제라는 말만 들으면 마오쩌둥 시대의 지령식 동원 경제가 떠오르지만, ‘신형’이라는 수식어가 중요합니다. 시장을 무시하고 정부가 명령만 내리는 방식으로는 첨단기술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중국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방향을 정하고, 자원을 모으고, 되는 분야에는 더 큰 자금을 몰아줍니다. 시장 수요도 보고, 기업의 실행력도 쓰고, 대학과 금융도 끌어들입니다.

 

중국 정부는 단순한 심판이 아닙니다. 때로는 설계자이고, 때로는 조정자이며, 때로는 가장 큰 고객입니다. 정책적으로 없던 시장을 만들고, 민간 기술을 직접 구매하며, 지방정부와 국유자본을 통해 특정 산업의 초기 위험을 떠안습니다. 방향이 정해지면 자원은 빠르게 집중되고, 학습 속도는 올라갑니다. 최종 목표는 분명합니다. 자립입니다.

중국이 반도체를 키우는 법

 

이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봐야 할 분야가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창신메모리, CXMT입니다. 창업자 주이밍은 칭화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베이징에서 플래시 메모리 설계회사 기가디바이스를 창업했습니다. 이후 중국제조 2025 흐름 속에서 허페이시의 지원을 받아 D램 기업 CXMT를 세웠습니다. CXMT는 겉으로는 민간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방정부 자본과 정책 목표가 깊숙이 들어간 회사입니다. 허페이시 산하 투자기관이 초기 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했고, 기가디바이스는 기술과 인력, 경영 역량을 제공했습니다. 이른바 ‘허페이 모델’입니다.

 

여기서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 국책 싱크탱크 DSET의 분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DSET은 중국이 대만 반도체 기업을 압박해온 방식을 하나의 반복 가능한 산업 전략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지방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챔피언 기업을 유치합니다. 부족한 기술은 대만과 같은 외국 기업과의 합작으로 채웁니다. 이후 대규모 정부 자금을 투입해 생산 능력을 빠르게 늘리고, 보조금을 등에 업은 가격 덤핑으로 해외 경쟁사를 몰아냅니다. 이러한 과정은 이후 인접한 산업으로 목표를 옮겨 반복됩니다. 그리고 허페이시가 다음으로 착수한 사업이 바로 2016년 설립한 메모리 반도체 기업 CXMT였습니다.

 

한국의 가장 강한 패가 표적이 될 때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DSET의 조언은 곱씹어볼 만합니다. 반도체 스타트업과 차세대 기술 기업이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을 만들고, 필수 소재·장비·기술의 대중국 이전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 공조를 강화하며, 미국의 제조 생태계 복원 과정에서 단순 생산 파트너가 아니라 핵심 설계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을 AI 리더로 만든 혁신의 설계자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중국을 막연히 과장하지도, 쉽게 깎아내리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중국 혁신의 본질은 천재 한두 명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지방정부가 돈을 대고, 기업이 실행하고, 시장이 검증하고, 대학이 인재를 공급하는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낭비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원이 집중되고 효율이 높아지면, 몇몇 분야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습니다.

 

한국 반도체의 미래는 여전히 밝습니다. 하지만 밝다는 말과 안전하다는 말은 다릅니다. AI 시대의 메모리는 한국의 가장 강한 카드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겨냥될 카드이기도 합니다.

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뉴스레터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수신거부]를 클릭하신 후 메일주소를 발송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