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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과학] vol.31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래는 먼저 시작된다

2026. 04. 23

 

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주의 과학』입니다.

 

4월은 과학을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내일은 과학의 날이기도 하죠. 과학을 날을 맞아 보내드리는 이번 호에서는, 우리 몸속 가장 미세한 층위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언어와, 학문의 경계에서 이제 막 태어나기 시작한 새로운 질문들을 함께 전해드립니다.

 

먼저 하버드 의과대학 하택집 교수님의 발표를 통해, RNA 위에 새겨진 ‘두 번째 언어’가 왜 생물학과 의학의 새로운 프런티어로 떠오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어서는 최종현학술원이 2025년 처음 출범한 대학원생 간 융합 연구 실험 플랫폼인 '시너지 랩 네트워크'의 결과물도 함께 들여다보시죠.

RNA 위에 쓰인 두 번째 언어

요주에 저희가 모신 연사님은 하택집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님이세요. 보스턴 어린이병원 세포·분자 의학 프로그램도 이끌고 계신 교수님은 물리학과 생물학을 결합한 생물물리학 분야의 권위자이십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발표는 교수님이 저자로 참여하신 美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의 보고서 『Charting a Future for Sequencing RNA and Its Modifications』를 바탕으로, RNA 변형 연구가 왜 지금 중요한지 짚어보는 내용입니다.

RNA란 무엇인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작동은 단백질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RNA는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가 단백질 합성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핵심 분자입니다. RNA는 화학적 반응도가 높아서 DNA보다 손상이 빨리 일어나요. 그런데 바로 그 반응성 덕분에 효소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답니다. 과학자들이 초기 생명의 기원이 RNA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 이른바 ‘RNA 월드’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RNA, 너 오늘 좀 새롭다?

 

RNA는 리보스, 인산, 그리고 질소 염기(A, U, G, C)로 이루어진 뉴클레오타이드가 연결된 고분자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배운 내용이죠. 그런데 하택집 교수님의 발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배웠던 RNA는 어디까지나 '가장 기본적인 상태'일 뿐이었던 거죠.

 

아까 말씀드렸듯, RNA는 반응성이 높기 때문에, 처음 만들어진 뒤 그 위에 다양한 화학적 변형이 일어납니다. 이를 RNA 변형이라고 해요. 현재 생채 내에서 발견된 RNA 변형은 약 170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변형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모양이 조금 달라지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RNA에 변형이 생기면 3차원 구조가 달라지고, 상호작용하는 단백질도 바뀌면서, 결국 원래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원래와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니, 그게 괜찮은 건가?” 싶으셨다면, 아주 정확한 질문이십니다! 실제로 RNA 변형은 노화, 신진대사 저하, 신경 질환을 비롯해 우리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RNA 변형, 이용해 볼 수는 없을까?

 

RNA 변형 연구는 아직 본격적인 출발선에 서 있는 분야입니다. 각각의 변형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포 안에서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조차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은 차이에 대한 이해는 이미 놀라운 기술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 mRNA* 백신입니다. mRNA 백신은 우리 몸 안에 mRNA를 넣어 항원 단백질을 만들게 하고, 이를 통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초기에는 mRNA를 그대로 투여할 경우 강한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 mRNA(메신저 RNA): RNA의 한 종류로, DNA의 유전 정보를 전달해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돕는 RNA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RNA 변형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mRNA 안의 일반적인 U(Uridine)를 N1-Methylpseudouridine이라는 변형 염기로 100% 교체했고, 그 결과 염증 반응은 줄고 안정성은 높아졌습니다. 염기 하나의 변화가 백신의 성패를 가른 셈입니다. 이 초기 연구를 이끈 카탈린 카리코와 드루 와이즈먼이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RNA 변형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희귀질환 치료는 물론, 미래 식량 문제 해결과 같은 전혀 다른 영역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은 분자 위에 새겨진 변화가 앞으로 어디까지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이런 논의를 담아낸 보고서가 美 NASEM에서 발간되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 기관은 어떤 곳이고, 왜 지금 RNA와 그 변형을 주목했을까요? 그 뒷이야기는 하택집 교수님의 발표집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온 미래: 미래를 앞당기는 실험, 시너지 랩 네트워크

융합의 새로운 무대, 새로운 세대의 등장
 
보통 융합 연구라고 하면 이미 각 분야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은 교수들이 모여 정교하게 설계된 협업을 떠올리게 됩니다. 최종현학술원 과학기술혁신위원회(과기위)가 바로 그런 축적된 전문성과 깊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자리라면, 시너지 랩 네트워크는 그보다 한 발 앞선, 아직 형태가 굳어지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에서 시작된 실험입니다.
 
시너지 랩 네트워크는 과기위 소속 연구실을 중심으로, 다른 연구실과 팀을 이루고 대학원생들이 직접 협업의 방향을 설계하는 시도입니다. 완성된 융합이 아니라, ‘융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테스트하는 자리이죠. 서로 다른 분야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는 태도, 자기 분야의 경계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유연함, 그리고 “이걸 왜 같이 안 해봤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는 순간들, 이 프로그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상 밖의 조합, 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꺼야
 
작년 한해 동안 이어진 시너지 랩 네트워크에는 세 개의 팀이 참여했습니다. 생명과학과 유전체 연구가 만난 팀은 노화와 질병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장기적인 협력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냈고, 전자소자와 연성로봇이 결합된 팀은 인간의 손을 닮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피지컬 AI를 훨씬 더 현실적인 기술의 언어로 끌어내렸으며, 뇌과학과 동물실험이 만난 팀은 행동 데이터를 통해 질병을 예측하는 새로운 접근을 실험했습니다.
 
언뜻 보면 자연스러운 조합 같기도 하고, 어떤 팀은 “이게 같이 되나?” 싶은 조합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 미묘한 어긋남에서 예상 밖의 질문들이 계속 튀어나왔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었습니다.
 
가슴에 남는 질문, 답보다 오래 갑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질문들은 당장 논문으로 정리되거나 단기 과제로 이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스스로를 끌고 갈 수 있는 방향, 말하자면 머릿속에 오래 남아 계속 돌아가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학문은 기존 분야를 더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나오기보다, 서로 다른 영역이 부딪히는 순간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서 나온 질문들은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미래를 향해 던져진 씨앗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창발의 순간, 아이디어는 마른 장작에 불똥이 튀기듯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었습니다. 최종 1위로 선정된 팀에서는 촉각 센서, 재료, 로보틱스라는 서로 다른 기술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처음부터 방향이 명확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발표가 이어지고 자료가 쌓일수록 오히려 복잡해졌고, 서로의 접근 방식이 부딪히면서 논의는 더 치열해졌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생들끼리 여러 차례의 자발적 토론을 거치면서, 어느 순간 공통의 문제의식이 또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전력·저데이터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경량화된 촉각 지능"이라는 개념은, 계속 부딪히고 다시 맞추는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떠오른 결과였습니다. 이 장면은 융합이 누군가의 기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열려 있고 자율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인상적인 지점은 학술원이 무엇을 했느냐보다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에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방향을 제시하거나 결과를 요구하기보다, 만남의 조건을 만들고 그 이후에는 한 발 물러서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오히려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 측면도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부딪히고, 합의에 도달하는 경험이야말로 이후의 협업을 훨씬 더 오래 지속시키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확장되는 네트워크, 한번 연결되면 다음은 더 쉽습니다
 
그리고 이 실험이 남긴 또 하나의 결과는 사람 사이의 연결입니다. 연구실과 연구실 사이에 자연스러운 접점이 생기고, 한 번의 만남이 다음 협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만들어졌습니다. 연구는 종종 프로젝트 단위로 끝나지만, 네트워크는 시간이 갈수록 쌓입니다. 시너지 랩 네트워크가 만든 것은 단일한 결과물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 관계의 구조입니다.
 
다음 가능성, 벌써 궁금합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은 세 개의 팀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와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합류하게 된다면, 이 네트워크는 훨씬 빠르게 새로운 질문과 가능성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시너지 랩 네트워크는 거창한 결론을 내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런 결론들이 자연스럽게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실험입니다. 그리고 이 실험은 이제 막, 가장 재미있는 구간에 들어섰습니다.
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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