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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위 발표집

[요주의 과학] vol.28 기술은 우리의 도구인가 반려종인가

2026. 03. 10

 

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하루 종일 스마트폰 없이 보내보신 적 있으신가요? 생각만 해도 조금 아찔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요주의 과학』은 이 '기술'에 대해, 우리가 매일 사용했어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기술은 과연 우리의 도구일까요, 아니면 우리 삶을 함께 구성하는 존재일까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최근 연구 논문 출판 생태계의 변화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이번주 주인공인 홍성욱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과학학과에서 과학사과학기술학을 연구하며, 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해 온 학자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역사·철학을 대중과 학계에 소개하는 여러 저서를 집필해 왔으며,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존재를 형성하는 관계적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포스트휴먼’ 담론을 통해 AI 시대 인간과 기술의 공진화를 사유하고 계십니다.

기술은 이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최근 해외에서는 AI 챗봇과 청소년 사이에 친구처럼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현상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아동이 AI 챗봇과 감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 검토를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기술이 단순한 정보 제공 도구를 넘어 감정과 관계의 영역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논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논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기술은 도구일까요, 아니면 관계의 주체일까요?

인간 중심을 넘어: 포스트휴먼의 문제의식

 

‘포스트휴먼’은 흔히 인간 능력을 강화하는 ‘트랜스휴먼’과 혼동되지만, 핵심은 다릅니다. 이는 인간을 초월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인간만을 중심에 두는 사고를 넘어서는 발상입니다.

 

홍 교수님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술은 중립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변화시키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과 기술의 공진화

 

강연에서는 인간과 기술이 오랜 시간 ‘공진화’해 왔다는 점이 소개되었습니다. 도구의 사용은 인간의 신체와 인지 구조에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안경, 스마트폰,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이 우리의 일상과 인식 방식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현상은 단순한 의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우리의 관계망과 사고의 연장선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기술은 인간을 돕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죠.

반려종으로서의 기술

 

홍 교수님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주인과 도구’가 아니라, 반려종(companion species)’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것을 제안합니다. 반려종이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해 온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기술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기술에 의해 변화해 왔습니다.

 

오늘날 AI 챗봇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사례 역시 단순한 일탈 현상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 관계의 구조 안으로 깊이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일 수 있습니다.

 

기술을 무조건 배제하거나, 반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 모두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인간 사이에 개입할 때 어떤 새로운 관계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성찰하는 일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AI 시대에 우리는 기술을 통제하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기술과 함께 서로를 형성해 온 존재입니까?

 

이번 강연은 인간과 기계를 과거처럼 ‘주인과 도구’의 관계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 인간과 기술을 오랫동안 공진화해 온 반려종의 관계로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인간은 기술을 만들어 왔지만, 동시에 기술 또한 인간을 만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홍성욱 교수님의 강연이 더 궁금하시다면, 아래 발표집과 영상에서 전체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논문 한 편의 가격

오픈액세스 로고      
과학 논문은 보통 학술지를 통해 세상에 공개됩니다. 과거에는 이 학술지를 구독하는 사람만 논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픈액세스(Open Access)라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논문을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공개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 모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독자가 아니라 저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일부 국제 학술지에서는 논문 한 편을 공개하는 데 700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 가까운 게재료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이 구조에 최근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중국과학원(CAS)이 비용이 특히 높은 해외 오픈액세스 저널에 대해 연구비로 게재료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알렸기 때문입니다. CAS는 약 100여 개 연구소에서 5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활동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 조직입니다. 이번 조치의 대상에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약 30개의 학술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Nature Communications와 Science Advances에 실린 논문의 약 10%에 CAS 소속 연구자가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비교적 당연하게 여겨져 온 과학 출판의 구조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학술지 논문은 보통 동료 연구자들이 내용을 검토하는 동료 평가(peer review)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은 과학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무보수로 이루어지는 봉사 활동에 가깝습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연구자들을 대신해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이 검토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리뷰가 AI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해 작성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되면서 심사 과정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논문이 최종적으로 게재되는 단계에서는 그 학술지의 브랜드와 영향력을 유지하는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게재료가 요구됩니다.
 
이 구조가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술지의 이름이 연구자의 평가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연구 성과를 평가할 때 논문의 내용보다 학술지의 영향력지수(IF)가 더 큰 기준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더 높은 영향력의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높은 게재료와 교정 비용을 감수하는 구조에 자연스럽게 편입됩니다. 이 과정에서 게재료만 내면 논문을 받아주는 ‘약탈적 학술지’가 등장하는 등 학술 출판 생태계의 부작용도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구의 가치가 아니라 저널의 간판이 연구 성과를 대신 설명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셈입니다.
Chinese Academy of Science        
인터넷 시대에는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더 열린 공간에서 공유하고, 더 많은 연구자가 빠르게 접근해 검증에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일부 학문 분야에서는 논문을 온라인 공개 플랫폼에 먼저 공유하는 모델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연구 성과가 더 넓은 공간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연구자들이 공개적으로 토론하며 검증에 참여하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학술지의 간판이 연구자를 평가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논문 자체와 그 기여가 평가되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정책 조치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 데이터를 생산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가 자신들이 생산한 지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되고, 그 과정에서 누가 영향력을 갖는지를 다시 묻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이번 결정은 이 질서를 단번에 바꾸는 사건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 집단 가운데 하나가 지식의 유통 구조와 출판 권력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앞으로 학술 출판의 질서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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