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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과학] vol.22 3나노 이후, 반도체는 어디로 가는가

2025. 12. 23

 

과학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인사이트 『요주의 과학』 

안녕하세요, 요주의 과학입니다. 오늘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동지입니다.

혹시 크리스마스 트리가 왜 이렇게 화려해졌는지 아시나요?
원래는 긴 밤을 조금이라도 밝히고, 어둠을 이겨보자는 의미에서 하나둘 불을 달기 시작한 거라고 해요. 반짝이는 장식들처럼, 긴 겨울밤에도 세상을 밝히는 건 결국 작은 빛이었겠죠. 

 

『요주의 과학』 도 오늘은, 복잡하고 멀게 느껴지는 과학 이야기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비추는 작은 인사이트 하나를 꺼내보려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얼마전에 개최된 국가전략기술 서밋 2025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미세화는 끝났나? 아니면 판이 바뀐 걸까?

요즘 반도체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3나노, 2나노까지 왔는데… 이제 더 줄일 수는 있는 거야?”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 반도체의 자리는 어디지?”

 
그런데 과학기술혁신위원회에서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신창환 교수님의 발표를 듣다 보면, 이 질문 자체가 이제는 조금 낡은 프레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체 기술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지만, 그 진화의 방향은 ‘더 작게’가 아니라 ‘완전히 다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창환 교수님은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와 저전력 반도체 소자, 그리고 미세화 한계 이후의 소자 물리 문제를 연구해 온 반도체 소자 분야 전문가입니다. 특히 ‘더 작은 공정’ 경쟁을 넘어, 구조와 전력 중심으로 이동하는 반도체 기술 전환의 흐름을 학문적으로 짚어온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그럼, 반도체를 둘러싼 이 새로운 전환의 이야기를 『요주의 과학』 에서 함께 시작해볼까요? 

더 작게 말고, 다르게: 반도체 경쟁의 다음 단계

 

반도체 산업은 오랫동안 아주 단순한 규칙을 따라왔습니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어라. 그래서 공정은 90nm → 65nm → 45nm → 28nm … 숨 돌릴 틈도 없이 내려왔죠.

 

하지만 이제 이 공식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너무 작아진 반도체 안에서 전자들이 말을 잘 듣지 않기 시작한 겁니다. 채널을 더 줄이면 양자역학적 효과*가 나타나고, 전자 흐름을 깔끔하게 잡아두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미 반도체 내부에는 1nm에 가까운 얇은 영역들도 등장했습니다. 이쯤 되면, 기술력 싸움이 아니라 자연 법칙과의 씨름이 됩니다.

 

양자역학적 효과*: 소자가 너무 작아지면, 전자가 스위치가 꺼져 있어도 장벽을 통과해 새어 나오는 현상

 

그래서 업계가 택한 해법은 구조 변경입니다. 평면에서 입체로 올라간 거죠.

 

FinFET은 전류가 흐르는 길을 세워 전자를 붙잡아두려는 시도였고, 그 다음이 채널을 사방에서 감싸는 GAA 구조입니다. 삼성전자가 3나노 공정에 적용한 MBCFET은 얇은 채널을 여러 겹 쌓아, 전자를 훨씬 정교하게 다룹니다. 성능은 올리고, 전력 소모는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반도체 경쟁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몇 나노냐”보다, “전자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

인텔은 뒤처졌고, 승부는 사실상 동아시아에서

 

흔히 “인텔은 10나노에 머물렀고, TSMC는 7나노로 앞섰다”고 말하지만, 실제 기술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큰 흐름은 분명합니다. 10나노를 기점으로 첨단 공정의 주도권은 삼성전자와 TSMC로 넘어갔고, 지금의 승부처는 ‘누가 3나노 이후를 가져가느냐’로 옮겨왔습니다.

 

여기에 반도체는 이제 순수한 기술 경쟁을 넘어 공급망과 지정학의 문제가 됐습니다. 첨단 공정 기준에서 미국의 양산 역량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미·중 규제의 출발점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의 기회 역시 최첨단 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이 재편 과정에서 새롭게 생기는 빈자리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싸움은 ‘전력’과 ‘물리 한계’다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변화가 있습니다. 반도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말 말도 안 되게 빨라졌는데, 전기를 쓰는 방식은 거의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칩 안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그걸 움직이는 전압은 20년 동안 1.2V에서 0.75V 정도로 조금 내려오는 데 그쳤습니다. 자동차 엔진은 계속 커지고 빨라졌는데, 연료 소비는 그대로인 셈이죠.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반도체 업계는 아예 새 길을 찾고 있습니다. 전기를 켜고 끄는 방식을 바꿔보자는 겁니다.

 

  • 강유전체 소자: 아주 작은 전압에도 스위치가 확 켜지는 소자
  • 음의 정전용량 효과: 전자를 밀어주는 힘을 구조적으로 증폭
  • steep-switching: ‘애매하게 켜짐’ 없이 딱 켜지고, 딱 꺼지게 만들려는 시도

 

쉽게 말해, 이제 반도체 경쟁은 더 얇은 선을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 법칙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얼마나 똑똑하게 우회로를 찾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요주의 한 줄 정리

 

반도체는 더 이상 ‘미세화의 속도전’이 아닙니다. 구조와 전력, 공급망과 지정학이 동시에 얽힌 종합 전략 산업으로 완전히 넘어왔다고 볼 수 있어요.

 

교수님의 깊이 있는 강연과 현장의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발표집을 한 번 쭉 훑어보세요. 강연의 맥락이 훨씬 또렷해집니다. 

우리나라 전략기술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지난 12월 18일 열린 국가전략기술 서밋 2025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을 둘러싼 국제 경쟁 속에서, 한국이 무엇을 ‘전략기술’로 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점검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서밋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단연 AI였습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조연설에서, AI를 통해 과학기술 혁신을 가속하는 “전략기술이 전략기술을 혁신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강조했습니다.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의 부활, 범정부 AX 지원, R&D의 전략적 투자 등을 통해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세계를 선도할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메시지도 분명했습니다. 다만 이날 예고됐던 새 정부 국가전략기술 확정안은 부처 간 논의가 길어지며 내년 상반기로 발표가 미뤄졌습니다. 전략기술 선정에 따른 지원 혜택과 범위를 두고 여전히 조율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읽히네요.

 

같은 ‘전략기술’, 서로 다른 시선들

 

이번 서밋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정부의 의지뿐 아니라, 전략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입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설계자(Designer) 국가로의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남이 만든 지도 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던지는 질문을 통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른바 ‘질문 기반 혁신’을 통해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자는 메시지였죠.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최종현학술원이 함께 한 '그랜드 퀘스트' 의와도 맞닿아 있어 더욱 의미 있게 들렸습니다.

 

이어 김성근 포항공대 총장은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습니다. 현재 논의되는 전략기술이 너무 넓어, 하이테크·딥테크·응용·기초기술이 뒤섞여 있고, 대학·출연연·기업의 역할 또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략기술이라는 이름은 남지만, 전략으로서의 선명함은 오히려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전략기술을 ‘전략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시간

 

그렇다면 전략기술이란 무엇이어야 할까요? 중요해 보이는 기술을 모아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략기술의 핵심은 결국 “왜 이 기술에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전략기술은 단순한 R&D 분류가 아니라, 국가 의사결정의 등급에 가깝습니다. 기술의 중요성뿐 아니라 외부효과는 얼마나 큰지, 시장에만 맡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지, 국가 차원의 개입이 어떤 비대칭적 이익을 만들어내는지를 함께 따져봐야 합니다. 이번 국가전략기술 서밋은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 목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전략기술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깊이 있는 논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발행인 :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2팀 | 이주섭 팀장, 이우원 PM, 전소민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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